오픈홀덤 분석기
270——————== “어디를 가고 싶으신가요?”
여전히 성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성녀는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이 도시를 떠나겠다는 말인가요?”
“네.”
“꼭 저와 함께 가셔야할 이유가 있으신가요?”
당연히 그녀에게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건내준 때문만은 아니리라.
“음. 당신과 함께 있으면 늘 이런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어쩐지 진실로 들린다.
조금 무섭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이 도시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이것도 거짓 같지는 않다.
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진실을 찾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난다해도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혹은 파워볼게임 무언가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녀님께서는 이 도시를 떠나고 엔트리파워볼 싶으신가 보군요?”
“전 이 아름다운 도시를 사랑해요.
그리고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절 사랑해주시죠.
만일 이곳을 떠나면 항상 그리울 거예요.
밤이면 친구들과 가족들 생각에 눈물이 날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등으로 눈을 닦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곳을 떠나 당신과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어요.”
“그 누구의 지시도 아니고, 당신이 그리 생각하셨단 말이죠?”
“네. 저의 행동은 온전히 저의 의지에서 비롯되요.”
“하지만 저와 함께 다니신다면 딱히 좋은 꼴은 못 보실텐데요.”
“상관없어요. 어디를 가던 주께서 함께하실 거예요.”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음…”
성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그렇긴 하겠군요. 지금까지 도시에서 성녀가 도망친 적은 없으니까요.”
그녀는 조금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하지만 제 알 바 아니죠.”
그러곤 금세 예의 그 발랄한 얼굴로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성녀님을 모시도록 하죠.”
“나도 갈 거야.”
“나도. 언니.”
한창 때의 젊은이들이라면 그렇듯 두 소녀도 모험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너희들은 안 돼.”
하지만 성녀는 바로 그녀들의 “어째서? 나도 내 의지로 도시를 나갈거야.”
에밀리아가 날 바라보며 말한다.
그녀의 눈빛에선 알 수 없는 욕구가 느껴진다.
어째서인지 두 소녀의 욕망은 도시를 나가는 것보다 내가 꺼내놓는 간식에 있는 듯 하다.

“너희에겐 할 일이 있어.”
“뭔데?”
“성녀가 되야지.”
“성녀가 아무나 되는 건줄 알아?”
“될거야. 틀림없이.”
“어째서?”
“이 분을 만나게 된 건 우연이 아냐. 두 사람 모두 성령의 EOS파워볼 돌보심이 있는 거야.”
어쩐지 둘러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 뿐인가 보다.
두 소녀는 성녀의 말을 감쪽같이 믿어버렸다.
“알았어.”
“언니. 정말이지?”
아무래도 성녀의 말에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겐 어떤 특별한 힘이 있나보다.
두 소녀는 흔쾌히 도시를 떠나 모험을 시작하는 욕망을 떨춰버렸다.
“저도 두 분과 함께 했으면 좋으련만…
대신 작별의 선물을 드리지요.”
난 두 소녀에게 그 종이 봉투 가득 먹을 것을 넣어주었다.
두 소녀는 언니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한편으론 한참을 먹어도 끝나지 않을 간식에 기꺼워하며 돌아갔다.
“이젠 나가요.”
성녀는 동생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성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괜찮을까요? 성녀님이 도시 밖으로 나가면 막지 않을까요?”
원래 계획은 성녀를 납치해 리콜 마법으로 도시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이 도시에서 성녀에게 지시를 내릴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성녀는 내 의문에 딱 잘라 대답했다.
그녀가 협조해준 덕분에 우리는 도시 밖으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도시를 지키는 경비들도 성녀인 그녀가 움직이면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 뿐, 아무도 어딜 가는지 묻지 않았다.

“이젠 어디로 가나요?”
성문을 나서자 그녀가 물었다.
“우선은 가볍게 산책이라도 할까요?”
“그러죠.”
도시 밖으로 나와 한동안 걸으면서 혹시라도 누가 따라오지는 않을지 로투스바카라 살펴보았지만,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신성 도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와서, 난 그녀와 함께 카나노스 왕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벨테브레이 가문의 그 노인은 날 보자마자 버럭 화를 내며 항의를 했다.
“약간의 소동이 있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이렇게 무사하군요.”
“그 말이 아니오! 어째서 그곳에서 그런 짓을 벌인거요?”
겨우 일주일을 못 봤는데, 노인은 그사이 열 살은 더 늙어버린 듯 하다.
그 무서운 신성 교회와 문제가 생겼고, 당장 카나노스 진주 상회의 재정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을 터이고, 벨테브레이 가문에 대한 왕실의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을 터이니 그가 제정신이길 바라는 것이 무리일 테다.
“당신 때문에 신성 교회에선 아시노스 상회와 거래를 끊어버렸소. 당신 때문에 우리가 입은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아시오?”
“어쩌다보니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벨테브레이 가문에서 잘 처리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다행히 노인은 나에 대한 일을 신성 교회에 알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당연하다. 만일 사건을 일으킨 것이 나라는 사실을 알렸다간 벨테브레이 가문도 결코 좋은 꼴은 보지 못할테니, 무슨일이 있어도 감추려 들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탕! 노인은 테이블을 힘차게 내리쳤다.
“말로만 그렇게 하면 다요?”
“그럼 이걸로 사과를 대신하지요.”
난 왕실에서 되사온 주식을 내 놓았다.
“왕비 전하께 웃돈까지 드리고 찾아온 5%의 주식과 왕세자 전하의 10% 입니다.”
카나노스 진주 상사의 주식 15%가 그의 앞에 놓였다.
노인의 얼굴은 묘하게 변한다.
“이건…”
“신성 교회의 납품권을 몰수당한 대가로 하지요.
나머지 담보는 필요 없는 것으로 하지요.”
이미 벨테브레이 가문에게 받은 6천만 골드만으로 난 2억 골드에 해당하는 주식을 로투스홀짝 넘겨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미 진주 장사로는 충분한 득을 보았다.
내가 보유하던 주식 중 20% 정도는 이미 카나노스 여러 유력자들에게 넘겨 2억 골드의 수익을 올렸고, 벨테브레이 가문에게 받은 6천만 골드와, 처음 상회를 설립하면서 진주의 대가로 받은 6천만 골드를 합치면, 난 지금까지 이제는 그다지 큰 가치도 없는 진주로 모두 3억 골드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왕비와 왕세자에게 넘겨주었다 다시 회수한 주식은 팔면서 받은 돈을 받은 것이니 딱히 손해라 할 것은 없다.
굳이 사지 않아도 될 주식을 샀으니 손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덕분에 난 신성 도시의 성녀를 손에 넣었으니, 1억 4천만 골드는 오히려 싸다는 생각이 든다.
“알겠소. 그렇다면 우리 사이의 거래는 모두 끝난 것으로 하지요.”
한참만에 노인은 내 호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당장은 숨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카나노스 진주 상사 문제도, 벨테브레이 가문의 절망적인 재정 상황도 이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남아있는 시간 동안 카나노스 진주 상사의 자산중 쓸모있는 부분을 어떻게하던 벨테브레이 가문의 소유로 만들고, 벨테브레이 상회의 악성 부채를 카나노스 진주 상사로 넘긴 뒤 파산시키는 것이 노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카나노스 왕국은 벨테브레이 가문 때문에 적지 않은 홍역을 치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다.
최초로 주식 회사란 개념을 도입한 모험은 거대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카나노스 사람들은 이제 돈의 맛을 알아버렸다.
다시 누군가는 주식 회사를 세울 것이고, 또 누군가는 거기 투자할 것이다.
욕심이란 것이 늘 그렇듯 계속해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기고, 또 일확천금의 행운을 맛보는 소수가 나타날 것이다.
모두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난 그렇게 벨테브레이 가문과의 일을 모두 결말짓고 카나노스를 떠났다.
“가셨던 일은 잘 되셨나요?”
벨테브레이 가문을 나와 성녀가 기다리는 호텔로 돌아가니, 그녀는 테이블 가득 카나노스 왕국의 먹거리 속에 파묻혀 고개를 빼꼼히 들고 인사를 한다.
한 시간 남짓한 외출에 대해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신성 도시를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성녀는 만족하고 있었다.
“예. 방금 사소한 업무를 마쳤습니다. 이제 다시 떠나보도록 하지요.”
“그럴까요?”
호텔을 나서면서도 성녀는 손에 쥐고 있던 커다란 컵에 든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퍼먹고 있었다.
아무도 이 발랄하고 먹성좋은 미녀가 그 무서운 성교회의 성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성녀와 함께 이동한 곳은 파뷸라 왕국이다.
이곳에선 지금 역사적인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다.
바로 금단의 약물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몬스터, 키메라를 사용해서 이웃 국가를 침략한 것이다.
파뷸라 왕국은 궁극적으로 대륙 정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런 파뷸라에 맞서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구프르는 우연치않게 손에 넣은 지구산 진주를 대량으로 풀어 긴급하게 군자금을 마련해 군사들을 늘리고 있었다.
원래였다면 이미 지구산 진주가 대량으로 풀려 나구프르는 진주로 그다지 큰 소득을 보지 못했을 터이지만, 이번엔 그 다섯 트럭 분량의 진주를 내가 차지하고 벨테브레이 가문에 독점 공급해서 적절한 수준으로 풀어왔기에 나구프르로서는 지난 몇 달 사이 큰 돈을 만들 수 있었다.
난 성녀를 도시의 가장 좋은 호텔에 머물게 하고 홀로 나구프르의 왕궁으로 찾아갔다.
벨테브레이 가문과의 일은 모두 끝났지만, 카나노스 왕국과 관련된 일은 아직 남아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나구프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구프르는 날 꽤 반겼다.
이미 전쟁이 시작되어 전쟁 자금이 다급한 나구프르 왕실은 대륙의 유명한 자산가의 방문이 기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