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게임
156——————== 그들은 자신들의 수호룡인 드래곤도 함께 그 공격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조금도 염두에 두고있지 않았다.
지금 공격!
그리고 난 유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푹!
마치 그림자처럼 대마법사의 뒤에서 나타난 유미와 다른 한 명의 뱀파이어가 각기 손에 든 칼로 대마법사들의 목 뒤를 찌르는 것이 시작이었다.
거의 동시에 스무 명 가량의 뱀파이어들이 마법을 사용하던 마법사들 뒤에 나타나 각기 목을 찌르거나 심장을 찔렀다.
카모플라주를 하고 다가서있던 다른 가디언들도 각기 자신이 맡은 기사들의 뒤를 공격했다.
드래곤과 거대뱀이 번개에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은 모습을 감추고 나타난 가디언들의 공격에 하나씩 쓰러졌다.
“으핫!”
그래도 자객의 칼이 몸통을 찌르는 순간 재빠르게 반응하는 기사들도 적지는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두르며 암습자의 무기를 후려쳐본다. 쨍강! 아쉽게도 가디언들이 들고 있는 칼은 모두 블러드 오리칼큠으로 만든 특제품이다.
왕실 기사단의 일원인만큼 제법 고가의 무기를 장비하고 있지만, 날카롭게 잘 벼려진 블러드 오리칼큠에 닿는 순간 나무 막대기 처럼 허무하게 잘려버렸다.
캉! 챙강!
“크악!”

자신의 무기가 허무하게 잘려버렸을 때의 당혹감 속에 기사들은 연이어 들이닥쳐오는 붉은 검신의 칼에 몸이 베어져버렸다.
역시 무기빨이 최고다.
잠깐 사이에 수십 명의 기사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쓰러져버렸다.
“피해랏!”
“이 비겁한 놈들!”
하지만 왕실 기사단이란 명성에 걸맞게 약간의 상처만 입고 몸을 돌려 습격한 자들에게 맞서 싸우는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칼이 부러져나가도 용케 다음 공격을 피하고, 연달아 들어오는 공격에 칼을 부딪치지 않으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했다.
전투 경험이 많은 기사들은 금세 정신을 가다듬고 공격해오는 붉은 갑옷을 입은 괴한들에 맞서 싸웠다. 제대로된 싸움이 시작되니 곧 가디언들의 미숙함이 눈에 드러났다.
기사들은 칼과 칼이 부딪치지 않도록 노련하게 움직이며 붉은 갑옷을 입은 암습자들을 몰아쳤다.
역시 전장에서 굴러먹은 기사들이라 그런지, 칼을 잡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몇 달에 불과한 가디언들과는 비교하는게 미안할 정도였다.
깡! 깡! 깡!

전부 기사들의 칼날이 가디언들의 몸통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사들의 칼은 붉은 갑옷에 작은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너무도 절망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상처하나 주지 못하고, 붉은 칼에 부딪치면 자신의 무기만 쑹덩 쑹덩 잘라질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남은 기사들도 한 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칼싸움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칼을 집어넣고 그냥 몸으로 부딪치는 가디언도 있었다.
대게 오우거나 트롤 같은 육체파 괴수들의 힘을 이식받은 여자들이다.
그녀들은 무식하게 달려들어 기사의 몸을 잡고 두 팔로 쥐어 뜯거나, 혹은 주먹을 휘둘러 마구 내리쳤다.
그런 방식은 놀랍도록 효율적이다.
여자들은 임플란트 시술 도중 알렉산드로스가 만들어 놓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몸에 이식받은 몬스터의 생을 체험한다.
두 주일간의 시술이 끝났을 때, 그녀들의 정신 깊숙한 곳에는 몬스터들의 그 야만스러운 행위가 남아있게된다.
마치 본능처럼 여자들은 몬스터가 되어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여자들에게 잡힌 기사들은 비참한 꼴로 팔이 뽑히고 내장이

터져 죽어갔다.
갑자기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마도 6클래스 정도?
아직 살아있는 마법사가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 아티팩트를 사용하려는 거겠지.
난 주저하지 않고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곳으로 디스펠을 사용했다.
“아앗!”
마법이 취소되면서 쓰러져 있던 사내 하나가 고개를 들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법을 취소당하는 것 만큼 마법사에게 당황스러운 일은 없다.
그자는 아마도 죽은척하다가 리콜 마법으로 달아나려 한 모양이다.
푹! 내 지시를 받은 유미가 그자에게 달려가 등에 칼을 찔렀다.
마법사는 회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엎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뒤로도 서너 명 정도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내 감시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자들 중 누구도 도망치게 놔둘 생각이 없었기에,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마력의 흐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내 마법의 수준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력의 양과 마력의 흐름을 느끼는 능력만은 아마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마법이 발현되기도 전에 디스펠을 사용하려면 해당 지역의 마법의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일은 내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곳에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슬슬 전장이 정리되고 있었다.
파뷸라 왕실 기사단 중에는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도 많았다.
정상적인 싸움이었다면, 힘은 월등하지만 기술은 미천하기 짝이없는 가디언들이 그리 쉽게 처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신경이 온통 괴물들에게 쏠린 것이 실책이었다.
이번 작전은 파뷸라 왕실에서도 파견된 기사들 말고는 겨우 서너 명만 알고 있는 비밀작전이었다.
아무도 이 일을 몰랐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늪의 주인 말고는 사람은 커녕 몬스터들도 감히 다가올 수 없는 곳이다.
원래대로 였다면 그들은 원했던 것을 모두 얻고 무사히 귀환했어야 한다.
핫셀바인 가문은 파뷸라 왕실 기사단의 죽음의 늪 원정이 끝나고 몇 년 뒤에 원정의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수십만 골드를 사용했다.
원정에서 부상을 입고 은퇴한 기사에게 수만 골드를 주었고, 기사단장의 정부에게 십만 골드를 주고 당시의 사정을 물어보도록 시켰다.
오늘 이 자리에서 파뷸라 왕실 기사단이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내할만한 비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원정으로 파뷸라 왕실은 정말 적지 않은 이득을 얻었고, 파뷸라가 대륙 남서부의 패자로 올라서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으니 그런 투자가 결코 아까울리 없다.
난 슬슬 마무리되고 있는 전장에서 눈을 돌려 여전히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거대한 뱀과 드래곤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미 대마법사의 헬스톰은 끝이 나서 번개는 더이상 떨어지지 않았지만, 두 괴물의 전투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드래곤이 끊임없이 퍼붓는 불길이 거대뱀의 대가리를 반넘어 태워버렸고, 드래곤의 입에서도 왈칵왈칵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브래스가 멈추면 드래곤은 마법을 사용해 아직 건재한 나머지 한쪽 눈을 노렸다.
뱀은 그런 모든 공격을 감내하며 드래곤의 몸통을 물어뜯는 것에만 열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힘이 빠지는지 두 괴물은 이제 바닥에 떨어져버렸지만, 여전히 상대에대한 공격만은 멈추지 않았다.
드래곤이 생각보다 약해요.
아까의 헬스톰도 그렇지만, 저 괴물뱀의 독이 워낙에 지독하기 때문이지.
아아. 독뱀인가요?
이 죽음의 늪에서 천 년 이상 살아온 놈이야.
놈의 이빨에는 끔찍한 시독이 가득하지.
그런 맹독을 몸에 직접 저렇게나 주입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살아있는게 대단한 거라고.
가디언들이 파뷸라 왕국 기사단을 처리하고 한 시간이나 지나서 괴물들의 사투가 끝이났다.
두 괴물은 이제 모든 힘을 소진하고 서로를 노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모두들 저 괴물들의 몸에 칼을 꽂도록 하세요.
저항할 도리가 없는 괴물들의 몸에 여자들이 다가가 칼을 휘둘렀다.
블러드 오리칼큠으로 만든 칼날은 괴물들의 몸을 움푹 움푹 베어낸다.
유미양. 가서 드래곤의 숨을 끊어줘요.
유미는 두려움 없이 쓰러져있는 드래곤의 대가리 앞으로 다가가 칼을 들었다. 고개를 바닥에 떨군채 누워있던 드래곤이 힘없이 유미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 억울함이나 분노는 없었다.
마치 모든 운명에 순응하는 눈빛이었다.
유미의 칼이 드래곤의 목을 갈랐다.
드래곤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송이양은 가서 뱀의 목을 잘라요.
이송이는 유미와 은지와 같이 첫번째로 임플란트 받은 여자들 중 한 명이다.
라이칸슬로프의 힘을 가진 그녀는 1기 가디언들 중 헌터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송이가 뱀을 마무리 지었다.
방금전까지 천지가 뒤집히도록 싸우던 두 거대한 몬스터들은 어이없게도 엉뚱한 여자들의 경험치 재료가 되어버렸다.
헌터들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성장한다.
그 몬스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성장의 폭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여자들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늪의 주인과 드래곤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않은 힘이 그녀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여자들이 막타를 치고 난 뒤, 난 거대한 뱀의 대가리 앞으로 다가섰다.
붉은 드래곤의 몸통 크기의 커다란 대가리는 아직도 드래곤의 몸통에 그 독니를 박은 채였다.
난 드래곤의 몸통 위로 올라가 그 독니 앞에 섰다. 육칠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송곳니의 뿌리 근처에 내가 찾던 물건이 있었다.
어린 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녹색 돌멩이가 어울리지 않게 독니의 뿌리에 박혀있다.
괴물뱀의 독니는 과연 단단하기 그지 없었다.
블러드 오리칼큠으로 만든 단도로도 그 돌멩이를 빼내는데 적지 않게 시간이 걸렸다.
이빨 마다 보석이 박혀있네요.
내가 하는 일을 구경하던 은지가 작업이 끝난 것을 보고 물어왔다.
그녀의 말대로 거대 뱀의 이빨에는 적지 않은 큼지막한 보석들이 박혀있었다.
전부 아티팩트이지. 이녀석이 마법을 사용한 것은 이 아티팩트 덕분이야.
몬스터가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마법을 쓰다니 상상도 못 했어요.
천 년도 넘게 살아온 놈이야. 더이상 몬스터가 아니라 영물이라 불러야 할 거야.
하긴 그러네요. 드래곤과 싸워서 지지 않는 놈이라니, 영물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아요.
그건 그렇고 정말로 어부지리였네요. 뭐 득을 본건 우리지만요.
그런데 파뷸라 왕국은 수호 드래곤을 잃어버려서 큰일이로군요.
저 붉은 드래곤 덕분에 지금까지 주변 나라들로부터 침략 한 번 당하지 않고 나라를 유지해 왔으니 말이지.
그런데 어째서 저런 위험한 모험을 한걸까요?
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법이지.
저 뱀을 사냥하는게 그렇게나 가치있는 일이었나요?
뱀의 시체도 꽤 훌륭한 전리품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드래곤과 바꿀 정도는 아니지.
누군지는 몰라도 어리석은 왕이로군요.
이번 일을 꾸민 것은 국왕이 아니라 황녀였지.
황녀요?